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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디자인역사: 르네상스 Renaissance

디자인 Design/디자인

by tamm 2021. 2. 1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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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 중세까지의 디자인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다. 

 

- 디자인 기원: tammist.tistory.com/36

- 비잔틴: tammist.tistory.com/36

- 로마네스크: tammist.tistory.com/37

- 고딕: tammist.tistory.com/38

 

이번에는 르네상스 시대에 대해 알아보자. 

 

 


개요

르네상스는 14~16세기 이탈리아에서 서유럽까지 확대된 인간성 해방을 위한 문화 혁신 운동이다. 당시의 이탈리아는 도시의 발달과 상업 자본의 형성을 배경으로 하여 개성·합리성·현세적 욕구를 구하는 반중세적 정신 운동이 약동하였다. 그리고 이 새로운 근대적 가치의 창조가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부흥이라는 형식을 취하였다. 하여 '재생'을 뜻하는 르네상스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출처: Oxford Languages languages.oup.com/google-dictionary-ko/)

 

르네상스는 문학·미술·건축·자연 과학 등 다방면에 걸쳐 서유럽 근대화의 사상적 원류가 되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도 유럽은 르네상스의 시작과 더불어 기나긴 중세시대의 막을 내렸으며, 동시에 르네상스를 거쳐서 근세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르네상스의 정신, 혹은 운동은 이탈리아에서 비롯되었으며, 얼마 안 가 알프스를 넘어 유럽의 다른 국가, 즉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독일, 스페인 등지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나라들은 이 운동에 거의 영향을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세기 초 이 운동의 인문주의자들이 종교 개혁의 원동력이 되어 교회 개혁과 학문적 방법에 영향을 주었다.

 

 Florence Firenze Italy Tuscany Architecture Europe Image by Andrea Spallanzani from Pixabay


르네상스의 개념

르네상스는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어의 renaissance, 이탈리아어의 rina scenza, rinascimento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 내려는 운동으로, 그 범위는 사상·문학·미술·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르네상스의 역사

5세기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그때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야만시대,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파악하고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이 야만시대를 극복하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르네상스는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이 운동은 곧 프랑스·독일·영국 등 서유럽 지역에 전파되어 각각 특색 있는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근대 유럽 문화 태동의 기반이 되었다. 


르네상스 사상의 기본요소는 F. 페트라르카가 이미 설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고대를 문화의 절정기로 보는 반면, 중세를 인간의 창조성이 철저히 무시된 ‘암흑시대’라고 봄으로써 문명의 재흥(再興)과 사회의 개선은 고전 학문의 부흥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인문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던 크나큰 확신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단순한 라틴학문의 부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지적(知的)·창조적 힘을 재흥시키려는 신념에 차 있었다.

당시 L.브루니는 자기 시대의 학문의 부활에 대하여 기술하였고, 16세기의 미술가 G.바자리는 저서 《이탈리아의 가장 뛰어난 화가·조각가·건축가의 생애》에서 고대 세계의 몰락 이후 쇠퇴한 미술이 조토에 의해 부활했다고 하여 ‘재생(rinascita)’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다시 볼테르는 14·15세기의 이탈리아에 학문과 예술이 부활했음을 지적했으며, J.미슐레는 16세기의 유럽을 문화적으로 새로운 시대라고 하여 처음으로 르네상스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인간성의 해방과 인간의 재발견, 그리고 합리적인 사유(思惟)와 생활태도의 길을 열어 준 근대문화의 선구라고 보고 이와 같은 해석의 기초를 확고히 닦은 학자는 스위스의 문화사가 J. 부르크하르트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860년에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문화》를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시대’로서의 르네상스라는 사고방식이 정착하여 오늘까지의 연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그는 르네상스와 중세를 완전히 대립된 것으로 파악하고, 근세의 시작은 중세로부터가 아닌 고대로부터라는 주장에 이르게 되었으며, 중세를 지극히 정체된 암흑시대라고 혹평하였다.


르네상스의 배경

르네상스는 여러 방면에 걸쳐 복잡한 국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간단히 요약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르네상스에 대한 논의는 이탈리아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발생하여 다른 곳으로까지 파급된 데에는 그럴 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 이래 오랜 역사가 축적되어 온 곳일 뿐만 아니라, 지리적 혜택으로 이슬람 세계 및 비잔틴과의 접촉을 항상 유지하여, 이들과 서유럽을 연결시키는 소임을 맡아왔다. 특히 11 ·12세기의 ‘상업의 부활’과 십자군 운동의 참여를 통하여 도시가 활성화하기 시작하였고, 12세기에는 중북부의 많은 도시가 자치도시로 조직되었다. 이들 자치도시들은 주위의 농촌지대도 지배하여 도시국가의 형태를 취하였다.

Photo by Nik Shuliahin on Unsplash


또 기존 봉건귀족층과 토지소유자계층은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게 되었으며, 이들이 도시의 경제활동과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특히 13세기 후반의 경제적 발전기에는 사회계층의 변화도 심하여, 상인의 현실적인 감각이 사회의 모든 면에 침투함으로써 이탈리아 특유의 시민문화의 기반을 형성하였다.

이탈리아는 지리적인 조건과 상업상 교류의 필요에 따라, 이슬람과 비잔틴 문화와의 접촉 가능성이 가장 많았고, 또 실제로 그런 교류가 유지되고 있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학문의 전통면에서도 스콜라 철학으로 대표되는 서유럽 문화의 중심지인 프랑스와는 달리 그들 나름의 독자적 전통을 보유하고 있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이들의 정치는 도시국가의 형태로 운영되었으며, 그리스 ·로마의 고대문화 역시 도시국가에서 발생 ·발전한 것이었다.

물론 고대의 도시국가와 이탈리아의 코무네(자치도시)와는 사회적인 기초구조에서 크게 다르지만, 형태 등의 면에는 공통성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고대의 법과 정치이론이 코무네에 적용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이와 같이 특수한 사회구조와 독자의 문화유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비잔틴과 이슬람 문화권과의 접촉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탈리아 코무네가 르네상스 운동의 진원지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구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르네상스의 예술가

르네상스에 대한 개념과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다. 르네상스는 문화, 역사 전반에 이르는 개념이므로 그 배경을 이해한 후에 르네상스 미술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이번에는 이론보다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을 느껴보자.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 Leon Battista Alberti, 1404.2.18 ~ 1472.4.25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의 철학자이자 건축가이다. 전공 분야는 법학, 고전학, 수학, 희곡, 시학이며, 또 회화나 조각에 있어서는 창작뿐 아니라 이론의 구축에도 기여하였다. 음악과 운동경기에도 뛰어났고, 제자리에서 사람 키를 뛰어넘었다고 전해진다.

 

왼: 산 프란체스코 대성당 (Basilica di San Francesco) 오른: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Novella) 출처: 구글 이미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 Filippo Brunelleschi, 1377~1446.4.15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적 건축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 주요 작품은 모두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다.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두 교회 산 로렌초 디 피렌체 성당 (1419년-1480년대)과 산토 스피리토 디 피렌체 성당 (1441년-1481년)은 르네상스 건축의 역사적 건조물로 평가된다. 

Florence Cathedral Cathedral Night Illuminated Image by Andrea Corsi from Pixabay

 

도나텔로 | 도나토 디 니콜로 디 베토 바르디 Donato di Niccolò di Betto Bardi,1386 ~ 1466.12.13

도나텔로는 이탈리아 피렌체 출신의 르네상스 시대 조각가이다. 로마에서 고대 조각을 연구하고 일찍부터 명성을 얻었다. 작품 경향은 중세적 자연주의의 전통과 고전의 형태미에 의하면서 차츰 새로운 힘찬 사실주의로 발전하였다. 

 

특히 원근법을 써서 입체감을 나타내어, 있는 그대로의 사실주의적인 표현에 힘썼다. <가타멜라타의 가마상>은 특히 뛰어나 르네상스 조각의 걸작으로 꼽힌다. 그는 기베르티, 브루넬레스키와 더불어 '르네상스 초기의 3대 조각가'로 불린다. 대표작으로 <성 조르조 상> <다비드> 등이 있다.

왼: 가타멜라타의 가마상, 오른: 청동 다비드상 출처: 구글 이미지

 

 

로렌초 기베르티 | Lorenzo Ghiberti, 1378 – 1455.12.1

로렌초 기베르티는 피렌체의 이탈리아 예술이다. 미켈란젤로가 낙원의 문이라고 부르는 피렌체 세례당의 청동 문을 만든 것으로 가장 잘 알려진 초기 르네상스에 금세공과 조각가로 훈련받은 그는 금속 조각을 위한 중요한 작업장을 설립했다. 

왼: Gates of Paradise, 중앙: St John the Baptist Ghiberti 오른: The story of Joseph, a panel from the second set of doors to the Baptistery 출처: 구글이미지

 

 

마사초 | Masaccio, 1401.12.21~1428

마사초는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의 화가이다. 남아있는 문서상의 기록으로는 1422년 마사초는 당시 피렌체 화풍을 이끄는 메디치 화가 조합 (Medici espeziali)에 가입한 것으로 보인다. 1423년에서 1425년 사이에 많은 인물화와 프레스코, 그리고 성당의 제단화를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마사초는 젊은 시절 피렌체에서 조토의 작품을 모사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를 사귀게 되어 원근법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게 된다. 1423년 에는 그들의 격려로 마솔리노와 함께 로마로의 여행을 가서 고대 로마, 그리스 작품에 영향을 받게 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화려한 장식의 고딕 양식에서 벗어나 좀 더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묘사에 치중하게 된다.

 

왼: 《성 삼위일체》(1425~1428) - 산타 마리아 성당, 피렌체, 오른: 성전세 (1425년경) - 산타 마리아 성당, 피렌체 출처: 구글 이미지

 

산드로 보티첼리 | Sandro Botticelli, 1445.3.1~1510.5.17 

산드로 보티첼리는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화가이다. 본명은 알레산드로 디 마리아노 필리 페피 (Alessandro di Mariano Fillipepi)이지만, "작은 술통"이라는 뜻을 가진 보티첼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비너스의 탄생>은 사실적 수법에서 벗어나, 상징과 장식을 강조하여 시적 세계를 이룩한 그의 대표작이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1482년 <봄>, 1486년 <비너스의 탄생>, 1481년 <성모 마돈나> 등이 있다. 

 

Oil Painting Venus Sandro Botticelli  출처: Image by WikiImages from Pixabay  
Sandro Botticelli - La Primavera - Google Art Project

 

레오나르도 다빈치 | 레오나르도 디 세르 피에로 다 빈치 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4.15~1519.5.2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석학(polymath)이다. 화가이자 조각가, 발명가, 건축가,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도시 건설가, 천문학자, 지리학자, 음악가였다.

 

2007년 11월에 네이처 지가 선정한 인류 역사를 바꾼 10명의 천재 중에 가장 창의적인 인물 1위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차지했다. 네이처는 과학 전문지이기 때문에 당연히 과학자를 1위에 뽑을 것이라는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였으며 2위는 셰익스피어였고, 과학자인 아이작 뉴턴은 간신히 6위를 차지했다.

 

르네상스형 만능인 다빈치가 역사상 가장 창의적인 융합형 인재로 평가된 것이다. 그는 평생 기술과 과학 그리고 예술을 하나로 융합하려는 창의적인 노력을 끊임없이 하였다. 그의 여러 작품 중 오늘날 가장 유명한 것은 모나리자이다. 모나리자 없이는 루브르 박물관을 논할 수 없다는 평가가 존재할 정도로 모나리자라는 작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며,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널리 알려진 매우 유명한 그림이다. 그 외에도 '최후의 만찬' 등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회화는 대기 원근법인 스푸마토(Sfumato) 기법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대표작인 <모나리자>에도 이 스푸마토를 이용하여 뒤쪽 배경을 흐릿하게 표현하여 공기까지 그림에 그렸다는 평을 받았다. 

Art Painting Mona Lisa Classic Woman Image by WikiImages from Pixabay

또, 그의 대표작 중인 하나인 <최후의 만찬>은 가톨릭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의 마지막 날의 정경을 그린 것이다. 그림은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수도원의 식당 벽화로 그려진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몇 안되는 완성품이지만 가장 손상이 심한 그림이다. 석고에 유채로 그린 것 때문이라고 하며, 간혹 직접 만든 물감을 사용하여 손상이 심해졌다고도 한다.

 

이 작품은 원근법을 사용하여 보는 이의 시선을 유도하는데 배경인 벽과 천장이 하나의 소실점으로 모이는 1점 투시도법으로 작업되었고 그 모이는 소실점의 위치가 그리스도의 머리 부분에 맞추어져 있어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을 중앙으로 유도한다. 

 

〈최후의 만찬〉(1495 ~ 1498, 밀라노,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의 수도원 식당) 출처: 구글이미지

 

 

미켈란젤로 | 미켈란젤로 디 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3.6~1564.2.18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대표적 조각가, 건축가, 화가, 그리고 시인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유년 시절부터 조토와 마사치오의 작품들을 습작하며 그림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13세 때 화가 도메니코에게서 그림을 배웠다. 14세 때부터 메디치 가문의 보호를 받으며 베르트르드 디 조반니를 통하여 도나텔로 작풍을 배웠다. 또한 성 베드로 대성전의 돔, 성 베드로 대성전의 피에타, 팔레스티나의 피에타, 론다니니의 피에타 등 세 조상을 미완성으로 남긴 채 89세를 일기로, 외롭고 괴로운 긴 생애를 로마에서 마쳤다. 

 

대표작으로는 <다비드>와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 벽화로 천지창조 등 구약 성서의 4가지 사건을 그린 작품이 유명하다. 

 

다비드 출처: 구글 이미지

1508년 바티칸 사도 궁전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위촉받고 허리가 꺾이는 듯한 고통에도 4년 만에 완성하였다. 1520년 메디치가 성당의 묘비를 10년에 걸쳐 조각하는 한편, 산 로렌초 성당 부속 도서관 입구를 건축하였으며, 1529년 독일 카를 5세 군의 피렌체 포위 때 방위 위원으로 뽑혀 성을 쌓았다. 

 

천지창조(시스티나 성당) 출처: 구글 이미지

 

 

라파엘로 산치오 | 라파엘로 산치오 다 우르비노 Raffaello Sanzio da Urbino, 1483.4.6~1520.4.6

라파엘로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예술가·화가이다. 《아테네 학당》이 특히 유명하다. <아테네 학당>은 에피쿠로스, 피타고라스, 안티스테네스 등 고대 그리스의 학자가 학당에 모인 것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다.

 

라파엘로는 이탈리아 마르케 지방의 우르비노에서 태어났다. 라파엘로는 젊어서부터 조형과, 감정, 빛, 공간표현 문제까지 두루 연마하였다. 그의 천재성은 16세에 그를 대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1504년 그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있는 피렌체로 이주하였다. 이곳에서 그는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비롯한 수많은 작품을 제작하였다. 1508년에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아 로마로 간 그는 프레스코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교황청의 건축과 회화, 장식 등 미술 분야에 관한 감독 책임을 맡고 있던 라파엘로는 37세의 생일에 갑자기 요절하게 된다. 그의 위대함을 알아보고 교황 직위를 내리려 했던 추기경 레오 10세는 라파엘로가 요절하자 그를 애도하면서 국가장을 치르게 한다. 라파엘로는 로마의 판테온에 묻혀있다.

 

아테네 학당 출처: 구글 이미지

 

조르조네 | 조르지오 바바렐리 Giorgio Barbarelii, 1478~1510

조르조네는 이탈리아의 화가이다. 그는 조반니 벨리니 이래로 베네치아파(색채주의 화풍)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 요절한 그에 관하여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왼: 젊은 여성의 초상, 오른: Giorgione - Three Philosophers - Google Art Project.jpg 출처: 구글 이미지

아래 그림 <The Tempest>는 폐허가 된 어느 조용한 촌락을 배경으로 하여, 바른쪽 잔디 위에서 젖을 물린 나체의 부인이 앉아 있고 왼쪽 끝에 젊은 병사가 서 있다. 때마침 구름은 낮게 깔려 있으며 번개마저 번쩍인다. 이것은 플리니우스가 말한 것처럼 페아레스(그리스의 화가)는 어느 누구든 그릴 수 없는 것, 즉 태풍을 그렸다고 하는, 고대의 기록에 대한 도전이라 여겨진다. 

(출처: ko.wikipedia.org/wiki/%EC%A1%B0%EB%A5%B4%EC%A1%B0%EB%84%A4)

The Tempest 출처: 구글 이미지

현재 Brunswick에 있는 Herzog Anton Ulrich 박물관에 있는 Giorgione의 초상화는 1509-1510년경 유화이다. 

Self portrait, by Giorgio da Castelfranco.jpg 출처: 구글 이미지

 

 

 

티치아노 베첼리오 | Tiziano Vecellio, 1488-90~1576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북이탈리아 피에베 디 카도레에서 출생한 이탈리아의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했던 화가이다.

그의 창작 시기는 베네치아 공화국 회화의 황금기와 맞아떨어졌다. 그 당시 베네치아는 경제적, 문화적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티치아노는 9살이 되었을 때 베네치아로 가서 젠틸레 벨리니와 조반니 벨리니 형제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513년 그는 산 사물엘레에 자신의 작업장을 열었고, 유럽 전역에서 찬양을 받는 화가로 발전했다. 1515년경에는 명백한 베네치아 화파의 거장이 되어 지식인들의 찬사를 들었고 소장가들의 찬미를 받았으며 귀족이나 궁정의 부름을 더 많이 받게 되었다. 

 

1533년 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고 그의 궁정 화가로 임명되었다. 1545년 티치아노는 교황 바오로 3세의 초청을 받아서 로마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미켈란젤로를 만났다.

 

1548년과 1550년 티치아노는 카를 5세와 그의 아들 펠리페 2세를 따라서 제국 의회가 있는 아우크스부르크에 갔다. 상당히 고령이었던 티치아노가 1576년 페스트로 죽었을 때 그는, 베네치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화가였다.

 

<성스런 사랑과 세속의 사랑>, <성모승천>, <바쿠스의 축제>,〈우르비노의 비너스〉등이 가장 잘 알려진 작품들이었다. 그의 작품의 특징을 이루는 것은 분명하게 드러나는 색채주의며, 그는 일생 동안 그런 특징을 유지했다. 기나긴 생애의 마지막 무렵 그는 극적인 양식의 단절을 완수했고, 그것은 이미 바로크적 특성을 향해 있었다.

 

왼: Portrait d'une Femme à sa Toilette, by Titian, from C2RMF retouched.jpg, 오른: Titian - Christ crowned with Thorns - Louvre.jpg 출처: 구글이미지
Venus de Urbino 출처: 구글 이미지


 

이렇게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건축과 작품을 보며 르네상스 미술에 대해 알아보았다. 원근법에 대한 연구와 함께 더 사실적인 표현을 위한 그 당시 예술가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있다. 그만큼 르네상스는 서양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화려하게 발전한 르네상스의 회화와 건축은 근세로 이어진다. 다음 글에서 근세로 정의되는 바로크 양식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질서와 균형, 조화에 지친 사람들에게 다가온 자유분방함과 불균형을 알아보자. 

 

 


관련 링크

출처: 두산백과 www.doopedia.co.kr/

출처: 미술대사전 terms.naver.com/list.nhn?cid=42635&categoryId=42635

출처: 다빈치의 위대한 유산 / YTN 사이언스 www.youtube.com/watch?v=ZaqJaMzpmoE&t=906s

출처: 르네상스 미술 ko.wikipedia.org/wiki/%EB%A5%B4%EB%84%A4%EC%83%81%EC%8A%A4_%EB%AF%B8%EC%88%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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